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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자사호 명인의 허와 실

자사호에 대한 신간, <박홍관의 자사호 이야기> 오랜 기간동안 준비한 것이다. 이제 교정을 완전히 마쳤으며 6월 3일 나온다. 여러번의 책을 내면서 느낀 점이지만, 한가지 주제로 책을 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구성을 좀 다르게 했다.

 

자사호의 진본에 대한 가치, 방고의 수준, 방고의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고 역사를 다루었으며, 구성 자체가 철저히 내방식으로 했다. 나는 자사호를 세세하게 구분하는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차문화에서 차도구를 보는 시각이다. 큰 틀에서 격조와 어울림에 품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과거 많은 수장품을 다루었고 또 충분히 즐기고 내 손을 다 떠나 보낸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논조가 다른 이유는 처음부터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다름을 즐기는 사람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본문 내용 가운데 하나를 열어 본다.

 

- 자사호 명인의 허와 실 -

한 분야의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명장’ 또는 ‘명인’이라고 칭하는데 자사호를 만드는 명인은 ‘자사 명인’이라고 한다. 자사 명인들 가운데는 특별한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 선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명인 칭호를 받은 사람들은 선대에서 만든 작품을 모방하는 추세다. 선대의 뛰어난 작품을 모방하는 자체가 내공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사호에 대한 수집 붐이 불었고, 자사호를 이용한 차도구의 수요가 많이 늘어나면서 작가마다 경쟁 우위가 생기게 되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열심히 노력하여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름과 직급만 높을 뿐 실력은 형편없는 작가들도 많이 나타났다. 자신의 한계를 속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대신 만들게 하고, 낙관만 자신의 것을 찍어 거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자사호를 선택할 때, 직급이나 이름에 연연하지 말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것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대공(대신 공정하는 행위)을 하지 않고 직접 작품을 만들어 내는 뛰어난 작가들도 많이 존재한다. 직급이 낮더라도 솜씨가 좋다면 소비자들은 정확한 평가를 내린다. 훨씬 직급이 높은 작가들의 부실한 작품을 사느니, 직급이 낮더라도 솜씨가 좋은 이들의 자사호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의흥의 명인 직급제도에 무언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흥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왕지사 다홍치마라고 자사호를 구입할 때 질 좋고 값비싼 것만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차를 마시려고 다호를 구입하려는 것이라면 굳이 비싼 예술다구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사 다호를 구입하기 전에 먼저 가격대를 정하고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가격대를 정하고 물건을 고른다면 자사의 품질은 오십보백보 수준으로 비슷해진다. 그렇다면 자사호의 형태와 소성된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자사호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석우.

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명품이란 과연 무엇인가?

명품에 대한 의미를 지워준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기본적인 미(美)가 있어야 한다.
만들어진 것이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미적 기준으로 보는가에 있어서는 동서양의 예술가들이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목적에 알맞은 기능과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기능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기(茶器)는 차를 마시기에 적당해야 하며, 차실(茶室)에 걸어두는 족자(簇子)라면 보기위한 것이므로 직물(織物)의 감은 어떤 것이며 상태는 좋은 것인가? 그림의 내용이나 글씨는 어떠한다. 예술적인 면에서 글씨의 테크닉은 어느 수준인가? 정신적인 면을 보기 위해서글씨는 누가 쓴 것인가를 함께 감상 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명장이라고 명품을 만드는 것이아니다. 무명인도 명품을 만들 수 있다. 그대신 기량과 정신이 뛰어나야 한다.

셋째. 시간을 초월하는 평가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명품이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동서양의 차인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명품은 회사의 브랜드가 아니므로 유명하지 않드라도 장인의 솜씨와 정성이 보여야 한다. 시대를 초월한 독창미는 동서양 차인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 시대로 끝난다면 기념물이 된다. 그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숭앙받을 수 있는 인류학적 표상이 되어야 한다.

명품을 논한다는 것은 제3의 눈으로 바라보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스스로 심미안을 키우는 것은 그러한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마련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많은 주변지식의 흡수는 가치평가를 위한 최적의 컨디션을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품에 대한 가치 기준은 정확히 규정된 것은 없지만 각자가 노력한 만큼 보일 뿐이다.

명품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려볼 수 있는 심미안은 각자의 몫이다.

다력(茶歷)에 집착하는 사람

사람의 경력이란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사람을 스카우트 하는데 있어서 경력관리에 즉, 프로필 관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 차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다름아니라 차를 마신 경력이 10년씩 더하여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굉장히 열심히 차 공부를 하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도 가지고 활동을 하다가도 어느 잡지에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10년의 세월을 올려서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만큼 자신이 해 온 일에 대해서 자신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일까?

우리가 차문화의 초기 1세대 들이 경력을 한 몇 년씩 올려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 누군가 용기있는 사람에 의해서 하나씩 하나씩 허상을 벗겨질 것인되 하물며 이제 10년 남짓 하여 몇차례의 이벤트 좀 하여서 잡지에 이름 좀 오르내렸다고 유명인사인 것처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차를 마신 경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정신을 가지고 차생활을 하며 후학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내가 가르키는 회원들에게 선생으로서 어떤 정신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 왔다면 그러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 젊은 사람들과 논리싸움에 밀려 너 몇살이냐하며 구차한 질문을 던지는 부끄러운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랴.
언젠가는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수많은 세월동안 차와 함께한 이들 눈에는 그 실상이 명확히 비추일진대 초급자들의 눈만 현혹한다고 해서 오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 명멸의 순간은 참으로 짧다. 언제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하며 지나치기 십상인 것이다. 하물며 문서나 기사로 남아있는 헛된 말들은 스스로도 부끄러워 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상엔 거짓이 없다.
온갖 거짓이 난무한다 해도 사람들이 알고 있고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제나 진실 뿐이다. 경력이 짧으면 어떠한가?  오히려 초심에 가까운 이들에게 오랜세월의 숙련자도 다시 배운 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처음 차를 배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초심으로 돌아가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차를 전하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지자.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한국 행다의 주체성

한국 행다(行茶)의 주체성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행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더욱 깊어진다. 내년에도 전국에서 한국차를 배우기위한 노력보다는 중국차를 배우거나 중국차와 관련된 자격증을 발급하는 사업이 사업성과 명분을 가지고 각단체가 경쟁적으로 주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일본 다도를 배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전국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 글은 지난 2005년 10월 월간다도에 기고 한 원고이지만, 12월31일 한 해를 보내면서 2006년에는 우리의 행다법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면서 ‘한국 行茶의 주체성’다시 한 번 올려본다.

금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국내외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마무리되고, 어떤 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진행이 되고 있다. 사건, 사고가 많은 시기에는 문화가 기를 펴지 못한다. 현대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고 급히 지나가기에 전통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높이 숭앙된다.

전통중에서도 예의를 다한 것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밀레니엄도 5년을 넘기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행다는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이 글에서는 더할나위없이 솔직히 말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행다(行茶)와 다법(茶法)의 용어 선택에 대해서는 행다로 정하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행다 : 차를 내기 위해 정해진 동작에 의해서 행동을 모범적인 법칙에 맞게 한다.
다법 : 차를 내는 행위뿐 아니라 차 맛이나 차의 정신까지를 포함하며, 차 따는 법, 차 우리는 법, 차 마시는 법 모두를 포함한다.

주지하는 바,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우리의 행다는 참으로 묘한 형상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순 조선식도 아니고, 순 일본식도 아니駭? 수많은 차 선생의 입장은 든든한 반석이 아닌 눈총을 받는 입장인 경우가 더 많았었다. 양반 가문에서 차(茶)를 통한 전통은 미미했고, 일본식 차 마시는 법이 올바른 법도인 양 행세를 해 왔다. 차 마시는 일과 그 주변적 행위가 문화적인 형태이기에 평범한 가정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했고, 속칭 상류에서의 유형이 근년에 이르러서야 여러 계층이 공유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장되었다. 아는 사람만 알던 보이차의 이론이 흔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차인 확대의 결과라 하겠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는 역사적 배경 속에 사람들이 살아오던 정신적, 물질적, 생활적인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일본은 실생활에서의 음료로 굳혀진 중국에 비해 역사적, 지배 이념의 특수성, 계층의 분화 등 철학적, 이념적 특성을 가지고 있되, 그 근본적 외양과 형태로 중국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차 마시는 일에 굳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한 . 중 . 일 세 나라가 가까우면서도 참으로 특성이 고유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 이념과 방식을 가지고 차 마시는 행위를 완성시켰을까? 진실로 골똘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다법을 배우고, 중국에 가서 이국적인 것에 자격증도 가지고 오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이 땅의 사람들이 가지고 또 공감하는 우리네 전통 행다법은 어디에서 배워오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가? 일부 우리식으로 주체성을 가지고 발표한 것은 외면당하거나, 정통이 아니라는 식의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다법이 일본식(日本式)이라는 현실은 그러한 바탕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주변은 확대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진실된 전통성이 있는 행다법을 보여줄 의무가 차인들에게 있다. 우리는 유가식(儒家式) 행다가 있었고, 전통 가내(家內) 행다법이 남성, 여성을 구분하여 존재 했었다. 관혼상제에 존재했으며, 그 의식의 수준과 차의 선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연습은 많이 되었다. 이젠 우리의 행다법이 나타날 차례가 아니겠는가? 외국의 형식이 모방되어 펼쳐진다 해도 그 내면에 우리의 정신이 표출될 수 있을까?

혹자는 일본식 다도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시간적인 이유를 들어 한국식 행다법을 형성케 했다고 한다. 일부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30년간 차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창기 차인들이 일본의 전차도 및 말차 행다를 모방하면서 행다 발표를 해 왔다.

양반 문화가 소멸되다시피 한 근대화 이후 식민 산업, 그 후의 전환, 다시 산업화된 사회의 조류는 그 이전의 전통성을 까마득히 망각하게 만들었던 것의 주된 이유라 하겠다. 현재 우리의 행다법은 일본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 우리식도 아니다. 일본식 행다법에서 생략되고, 사찰에서의 선다법이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에서 표현되고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서의 전차도는 각 유파마다 국지적인 특성이 나름대로의 철저한 동작이 이미 굳혀졌고, 그 본질인 차의 맛과 사용되는 기물의 수준을 논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차의 맛으로까지는 접근치 아니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면에 치중하고 있다. 혹여 비판받을 현실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발전은 긍정적인 것이다. 의례라고 하는 것은 철저한 외양상의 절차와 격식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런 형식적인 면이 굳어져야만 그 후에 차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형식을 멀리한 경우에는 높은 평가의 기준이 차 맛에 있겠지만, 행다법에 있어서의 1차적 급선무는 형식의 정립임에 두말할 나위 없다. 중국에서의 선차와 불차,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련의 중국식 다예표현의 일면을 살펴보자. 생활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튀어나온 문화상품의 성격도 성격이려니와 화려한 동작은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성에 의거했지만 실제로는 근래에 만들어진 행다에 그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이 수준이다. 우리의 수준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또 외면하면 안 된다. 우리의 수준을 똑바로,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 계단이 무엇인지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의 격식과 예절을 지니고 의례가 넘쳐나고,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기품 있고 잘 갖추어진 한국의 행다법을 만들고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내면에 철저히 다듬어진 우리의 철학과 의식이 살아 숨 쉬고 찻잔에서도 한국차의 향과 맛이 그득히 넘쳐흐르는 한국의 행다법이 자연스레 정립이 될 것이다.

무조건 모방하고 제 것인 양 만들어 보이는 일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과 역사적 유구함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중국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이다. 한국의 행다법이 무엇이 될까,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행(行)하고 생각(思)해야 하는 문제이다. 어렵게 베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과 몸으로 체득하여 이루어지는 생활이며, 더 나아가 전통이 되어야 한다.

2005. 12. 31 석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