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문화가 발전하려면 축적된 지식과 자료가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현재는 과거를 발판으로 하고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보존과 연구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기록을 많이 남긴 민족이기는 하지만 그 보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고려 때에는 삼국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지우려하고, 조선에서는 고려의 기록과 유물을 그다지 많이 남기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역사란 후손이 만들어 가는 것 이다. 특히 후손이 강자가 되어 기록한 것이나 특정한 이익이 개입된 역사의 기록이란 정확성이나 진실성을 확인 할 수 없다. 또 역사적인 물증이 있는 것이라도 치욕성이 있으면 이를 폄하하거나 말살하려 들기까지 한다. 한번 진실이 왜곡되면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이를 잘 수용하지 않으려하고 전통과 역사를 내 세우며 억지로라도 그것을 고수하려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5000년으로 한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학계에서는 원삼국으로 기점을 삼는다. 왜냐하면 나라의 기원을 삼을 만한 객관적인 기록이나 유물이 원삼국을 넘어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 학자들이 동양의 문화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정도라고 이해하고 있을 때, 3500년 전의 상(商)나라의 문자를 새긴 갑골(甲骨)이 발굴되면서 중국의 역사를 새로 인식하게 된 것처럼 물증이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에게 차의 역사는 길지만 오늘날만큼 차가 백성의 삶 깊숙이 들어 온 때는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그 자료는 턱없이 빈약했고, 그나마 있는 도자기 같은 것도 일본인들에 의해 그 값어치가 정해진 것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오래전부터 차를 마셔온 나라라고 강변해도 세계인의 눈에는 차의 기원은 중국, 차를 정립한 것은 일본으로 정리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며, 차 생산이나 소비에 있어 한국은 차를 마시지 않는 나라에 속해 있다. 비록 좋은 옥이 있더라도 그릇을 만들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아무리 긴 차 역사가 있어도 그것이 현대인의 삶 속에서 꿈틀거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차 도구란 마치 밭을 일구는 쟁기와 같아서 차문화를 일구는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다서(茶書)에서 차도구를 중요시하여 수록하였으며, 심지어 차도구에 성(城)을 바꾼다던가, 명예와 자존심이 걸려있다는 말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일본의 차선생들의 수업과정이 긴 것은 차의 예법보다 차도구에 대한 공부와 안목을 기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도구에 대해 우리나라 차인들의 인식은 아직도 그릇정도를 사 모으려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동양차도구 연구소의 발족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응해 탄생되었다. 차회는 많이 생겨도 차도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전문단체가 없는 현실 속에 동양차도구연구소는 역사속의 다도구의 발굴과 정리를 통해 우리의 차 문화를 계승하고, 현대의 새로운 차 도구를 개발하고 육성함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동양차도구 연구소가 걸어가야 할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한국 차문화를 빛내는 작은 자리매김을 할 것이기에 기꺼이 성원을 보내는 것이다. 또한 차도구만 연구하는 곳으로 한정되지 않고, 나아가 현대의 차 역사와 물증을 기록하고 보급하는 대광장(大廣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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