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두두옥 다완

斗斗屋茶碗(두두옥다완)의 아름다움은 요변의 아름다움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다완 중에서 가장 화려한 요변의 美(미)를 가지며, 철분을 포함하고 있는 태토와 흰색을 띈 태토, 2종류가 있다.

특징
가을에 잘 어울리는 다완이다. 두두옥다완의 굽 주변의 굽질 할 때 거친 표면 현상은 뻘물에서 서식하는 미꾸라지 군들이 뻘 속에 삭들어가고 난 뒤의 흔적 같다고 하여 미꾸라지집 즉, 魚屋(고기집)이라고 명칭을 쓴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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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논문 : "한국 차도구 명칭 통일 모형에 관한"에 기초로 한문의 표기는 음독을 원칙으로 한다. 이전에 사용한 도도야 다완은 두두옥 다완으로 표기한다.

 

교맥다완(蕎麥茶碗)

교맥다완(蕎麥茶碗)


에도 초기이후 부산 가마 근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정호다완(井戶茶碗)에 가까우며 정호의 곁에 있다는 뜻과 흙의 쌕깔이 메밀과 닮았다고 하여 생긴 말이라고 한다.

역사
정호다완이 만들어진 시대에 유사한 다완이 많이 나온 것으로 보아 1596년부터 1615년에 걸쳐 일본이 조선으로 주문한 다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임진왜란 전에 건너간 것과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서 당시 동래부 소속이었던 지금의 양산시 법기리에서 생산한 것의 2종류가 있다.

청정호다완(靑井戶茶碗)

청정호(靑井戶)라고 하는 명칭은 일본에서 임진왜란 이전에 우리나라 그릇을 그들이 다완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 갔을 때 청정호(靑井戶)가운데 청색을 띄는 것을 말한 것인데 모든 이도다완이 청색을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청색이 나는 것과의 구분을 위해서 명칭을 구분한 것이다. 대정호大井戶와 청정호(靑井戶)의 명칭에 관해서 본 연구소에서는 통일된 명칭이 만들어 지기까지 400년간의 전통을 가지고 내려온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징
- 여름에 어울리는 다완으로서 전이 많이 벌어진 것이 특징이다.
- 몸통 전체에 푸른 빛을 띄고 있는 것과 몸체에 물레 자국이 울퉁불퉁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 청정호에서는 물레 자국의 일어난 유색 변화, 굽 주변의 모습이 중요하다.
- 굽은 대정호(大井戶)보다 높지 않고, 대부분이 대나무 마디와 같은 모습으로 매화피 모양과 물레자국을 깎아낸 자국에서 3가지의 조화를 보고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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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 차도구 명칭 통일 모형에 관한 연구> 학위 논문에 의한 차도구 명칭 표기법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도다완"을 "정호다완"으로 한문을 음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명품이란 과연 무엇인가?

명품에 대한 의미를 지워준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기본적인 미(美)가 있어야 한다.
만들어진 것이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미적 기준으로 보는가에 있어서는 동서양의 예술가들이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목적에 알맞은 기능과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기능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기(茶器)는 차를 마시기에 적당해야 하며, 차실(茶室)에 걸어두는 족자(簇子)라면 보기위한 것이므로 직물(織物)의 감은 어떤 것이며 상태는 좋은 것인가? 그림의 내용이나 글씨는 어떠한다. 예술적인 면에서 글씨의 테크닉은 어느 수준인가? 정신적인 면을 보기 위해서글씨는 누가 쓴 것인가를 함께 감상 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명장이라고 명품을 만드는 것이아니다. 무명인도 명품을 만들 수 있다. 그대신 기량과 정신이 뛰어나야 한다.

셋째. 시간을 초월하는 평가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명품이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동서양의 차인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명품은 회사의 브랜드가 아니므로 유명하지 않드라도 장인의 솜씨와 정성이 보여야 한다. 시대를 초월한 독창미는 동서양 차인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 시대로 끝난다면 기념물이 된다. 그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숭앙받을 수 있는 인류학적 표상이 되어야 한다.

명품을 논한다는 것은 제3의 눈으로 바라보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스스로 심미안을 키우는 것은 그러한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마련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많은 주변지식의 흡수는 가치평가를 위한 최적의 컨디션을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품에 대한 가치 기준은 정확히 규정된 것은 없지만 각자가 노력한 만큼 보일 뿐이다.

명품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려볼 수 있는 심미안은 각자의 몫이다.

다력(茶歷)에 집착하는 사람

사람의 경력이란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사람을 스카우트 하는데 있어서 경력관리에 즉, 프로필 관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 차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다름아니라 차를 마신 경력이 10년씩 더하여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굉장히 열심히 차 공부를 하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도 가지고 활동을 하다가도 어느 잡지에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10년의 세월을 올려서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만큼 자신이 해 온 일에 대해서 자신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일까?

우리가 차문화의 초기 1세대 들이 경력을 한 몇 년씩 올려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 누군가 용기있는 사람에 의해서 하나씩 하나씩 허상을 벗겨질 것인되 하물며 이제 10년 남짓 하여 몇차례의 이벤트 좀 하여서 잡지에 이름 좀 오르내렸다고 유명인사인 것처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차를 마신 경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정신을 가지고 차생활을 하며 후학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내가 가르키는 회원들에게 선생으로서 어떤 정신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 왔다면 그러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 젊은 사람들과 논리싸움에 밀려 너 몇살이냐하며 구차한 질문을 던지는 부끄러운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랴.
언젠가는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수많은 세월동안 차와 함께한 이들 눈에는 그 실상이 명확히 비추일진대 초급자들의 눈만 현혹한다고 해서 오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 명멸의 순간은 참으로 짧다. 언제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하며 지나치기 십상인 것이다. 하물며 문서나 기사로 남아있는 헛된 말들은 스스로도 부끄러워 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상엔 거짓이 없다.
온갖 거짓이 난무한다 해도 사람들이 알고 있고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제나 진실 뿐이다. 경력이 짧으면 어떠한가?  오히려 초심에 가까운 이들에게 오랜세월의 숙련자도 다시 배운 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처음 차를 배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초심으로 돌아가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차를 전하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지자.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보이차 병배(倂配)의 진실

1. 병배란 무엇인가?
보이차을 이야기 할 때 병배(倂配)라고 하는 것은 병차, 전차, 타차, 등 보이차를 긴압(緊壓)할 때, 보이차의 외형과 맛, 향 등을 고르게 하며, 제품의 품질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 각기 다른 원료의 장단점을 살려가면서 배합하는 것을 말한다.

2. 병배는 왜 하는가?
보이 생차(生茶)는 일반적으로 운남 대엽종 쇄청(曬靑) 모차를 원료로 사용한다. 쇄청 모차는 1차 가공을 마친 원료를 말한다. 이 모차는 산지, 토양, 해발, 계절 등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병배를 통해서 보이차의 품질과 가격 등을 조절하기 위해서 병배를 한다. 보이 숙차(熟茶)는 1차 가공을 마친 모차를 속성발효 과정을 거쳐 만든 산차를 말한다. 이 산차 역시 사용한 모차와 발효정도에 따라서 품질과 가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병배를 통해서 보이차의 품질과 가격 등을 조절하기 위해서 병배를 한다.
당대 보이차 병배의 대가인 추병량(鄒炳良) 선생은 병배란? “양장피단, 현우은차, 고저평형(揚長避短, 顯優隱次, 高低平衡) 장점은 드러내고 단점은 가리며, 우수한 점은 드러내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며, 장단점을 서로 보완해서 품질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원료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품질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서 병배를 한다는 말이다.

3. 병배는 어떻게 하는가?
모차 등급(等級)은 산지, 채엽시기, 해발, 품종 등에 따라 다르며, 호수(號數)는 채반의 치수에 따라 1~9호까지 크기를 나눈다. 등급과 호수가 다른 다양한 원료의 장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병배의 요령은 여러 가지 있지만,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외형을 곱게 하기 위해서 겉면에 등급과 호수가 좋은 원료를 사용한다.
2) 여름, 가을 차는 맛과 형이 엷고, 내포성이 떨어지며, 찻잎의 모양이 거칠고 푸석하기 때문에 봄 차를 병배하여 부족함을 보완한다. 평지차는 맛, 향, 내포성 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산차를 병배하여 부족함을 보완한다.
3) 차의 산지에 따라서 맛과 향이 다르기 때문에 너무 순하고 부드러운 차에는 맛과 향이 강한 차를 병배하여 부족함을 보완한다.
4) 발효정도에 따라서 탕색의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병배를 하여 진기(陣期)를 조절한다.
5) 숙성년도에 따라서 진기가 다르므로 병배하여 진기를 조절한다.
6) 제품의 가격에 따라서 적당한 원료를 병배한다.
7) 차창마다 품격과 개성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서 특정 지역의 원료를 병배한다.
8) 숙차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생차를 약간 병배한다.
9) 생차의 탕색을 조절하고 진화(陣化)를 촉진하기 위해서 약간의 노차(老茶)를 병배한다.
병배를 할 때는 보이차 원료의 각 등급과 호수, 산지와 발효정도에 따른 맛과 향을 정확히 감별할 수 있어야만 병배를 통해서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고,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

4. 병배의 문제점
병배의 원 목적은 위해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료의 장단점을 보완하고,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하고,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함이다. 병배를 잘해서 만든 차들은, 가격도 적당하고, 맛이 풍부하며, 외형도 보기좋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 보이차의 수요가 급증하고, 산지의 차 값이 오르면서, 병배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생산단가를 잦추기 위해서 마구잡이식으로 병배를 하고 있다. 외형만 번지르하고 속은 엉터리 원료를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보이차의 원료가 아닌 다른 차를 넣기도 한다. 병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하다보니, 단일 원료로 만들었음을 강조하거나, 병배 사실을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보이차의 병배에 대한 이해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북경 초의다실에서 甘也
2008년 9월 8일

공예 미술계 기술자격 인원명단

宜興市人事局職稱辦公布

工藝美術系列專業技術資格人員名單

 

의흥시인사국직칭판공포

공예미술계열전업기술자격인원명단

 

榮 譽 稱 號 類 영 예 칭 호 류 / 2005년 7월 27일 발표 자료

 

中國工藝美術大師 중국공예미술대사

蔣蓉 徐漢棠 徐秀棠 呂堯臣 譚泉海 汪寅仙

장용 서한당 서수당 려요신 담천해 왕인선

 

中國陶瓷藝術大師 중국도자예술대사

李昌鴻 鮑志強 何道洪 周桂珍

리창홍 포지강 하도홍 주계진

 

江蘇省工藝美術大師 강소성공예미술대사

顧紹培 鮑仲梅 徐安碧 邱玉林 李守才

고소배 포중매 서안벽 구옥림 리수재

 

江蘇省工藝美術名人 강소성공예미술명인

潘持平 張紅華 王石耕 沈蘧華 徐達明 曹亞麟

반지평 장홍화 왕석경 심거화 서달명 조아린

吳鳴 淩錫苟 儲立之 謝曼倫 吳震 許成權

오명 릉석구 저립지 사만륜 오진 허성권

毛國強 沈漢生 範洪泉 季益順 朱建偉

모국강 심한생 범홍천 계익순 주건위

 

--- 자료제공<죽천향실> 2005년 7월 27일 발표

중국 자사호 작가 직급별 분포도

중국 자사호 작가 직급별 분포도(2004년 기준)

 

 

국가 인사국 등록된 (중국.공예미술대사)

담천해(潭泉海). 서수당(徐秀棠). 서한당(徐漢棠). 여요신(呂堯臣). 왕인선(汪寅仙).

장용(蔣蓉)

 

국가 인사국 등록된 (중국.미술도자예술대사)

이창홍(李昌鴻). 주계진(周桂珍). 포지강(鮑志强). 하도홍(何道洪)

 

국가 인사국 등록된 (강소성.공예미술대사)

고소배(顧紹培). 구옥림(邱玉林). 서안벽(徐安碧). 이수재(李守才). 포중매(鮑仲梅)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강소성.공예미술명인)

릉석구(凌錫苟). 모국강(毛國强). 반지평(潘持平). 범홍천(范洪泉). 사만륜(謝曼倫). 서달명(徐達明). 심거화(沈遽華). 심한생(沈漢生). 오명(吳鳴). 오진(吳震). 왕석경(王石耕). 계익순(季益順). 장홍화(張紅華). 저립지(儲立之). 조아린(曹亞麟). 주건위(朱建偉). 허성권(許成權)

 

국가 인사국 등록된 (고급공예미술사)

갈명선(葛明仙). 고건방(高建芳). 릉석구(凌錫苟). 모국강(毛國强). 반지평(潘持平). 범홍천(范洪泉). 사만륜(謝曼倫). 시소마(施小馬). 심거화(沈遽華). 심한생(沈漢生). 양근방(楊勤芳)여준걸(呂俊杰). 오명(吳鳴). 오진(吳震). 유건평(劉建平). 계익순(季益順). 이벽방(李碧芳). 장홍화(張紅華). 저립지(儲立之). 저집천(儲集泉). 정휘(程揮). 조아린(曹亞麟). 조완분(曹婉芬). 주존엄(周尊嚴). 진국양(陳國良). 하정초(何挺初). 하준위(夏俊偉). 함중영(咸仲英). 허성권(許成權). 허염춘(許艶春)

 

국가 인사국 등록된 (성.지방 고급공예미술사)

강건상(江建翔). 고도영(顧道榮). 고려군(高麗君). 고치배(顧治培). 범영량(范永良). 서달명(徐達明). 예순생(倪順生). 오군상(吳群祥). 오배림(吳培林). 왕석경(王石耕). 윤상명(尹祥明).장경신(張慶臣). 정홍순(丁洪順). 진건평(陳建平). 황자영(黃自英)

 

국가 인사국 등록된 (성.지방 공예미술사)

갈도(葛韜). 갈도중(葛陶中). 강덕중(强德俊). 고건방(顧建芳). 고미군(顧美群). 고빈무(顧斌武). 고상군(高湘君). 고순제(顧順娣). 고위분(顧衛芬). 당영재(唐永才). 방옥란(房玉蘭). 방화평(方華萍). 범건군(范建軍). 범기화(范其華). 범우량(范友良). 범조대(范早大). 범지충(范志忠). 사소명(史小明). 상려병(桑黎兵). 서설연(徐雪娟). 서유명(徐維明). 서지명(徐之明). 서청(徐靑). 손백춘(孫伯春). 손지평(孫志平). 손홍원(孫洪源). 시수춘(施秀春). 여준경(呂俊慶).

 

오건림(吳建林). 오상대(吳祥大). 오숙영(吳淑英).오아극(吳亞克).오아역(吳亞亦).왕국상(王國祥). 왕도(王濤). 왕삼대(王三大). 왕생제(王生娣). 왕소룡(王小龍). 왕수방(王秀芳). 왕점영(王占榮). 요서궤(廖西氿). 운익평(惲益萍). 유봉영(劉鳳英). 육홍위(陸虹煒). 위종운(韋鐘云) 이군(李群). 이관(李寬). 이미금(李美金). 이원림(李園林). 이혜방(李慧芳). 장소언(蔣小彦). 장옥림(庄玉林). 장정중(張正中). 장지강(張志强). 전상분(錢祥芬). 조연평(曹燕萍). 주신홍(朱新洪). 주정화(周定華). 진홍평(陣洚平). 차단생(車旦生). 차()영(車( )英). 최국금(崔國琴).추옥방(鄒玉芳). 추순생(鄒順生). 침건강(沈建强). 포옥토(鮑玉免). 포화안(鮑和安). 하숙군(夏淑君).허화방(許華芳).호영성(胡永成).호홍명(胡洪明).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고급공예미술사)

갈명선(葛明仙).강건상(江建翔).고건방(高建芳).고도영(顧道榮).고려군(高麗君).고치배(顧治培) 방위명.(方衛明).범영량(范永良).사국부(史國富) 서남(徐南) 시소마(施小馬)양근방(楊勤芳)여준걸(呂俊杰).예순생(倪順生).오군상(吳群祥).오배림(吳培林).오소미(吳小楣).유건평(劉建平) 윤상명(尹祥明).이벽방(李碧芳).장경신(張慶臣).장신안(蔣新安).저집천(儲集泉).정홍순(丁洪順) 정휘(程揮) 조완분(曹婉芬).주존엄(周尊嚴).진건평(陳建平).진국양(陳國良).탕명얼(湯鳴臬)

하정초(何挺初).하준위(夏俊偉).함중영(咸仲英).허염춘(許艶春).황자영(黃自英)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고급공예사가 되기 전단계의 (구유(具有)공예미술사)

갈군(葛軍) 갈도중(葛陶中).고미군(顧美群).방옥란(房玉蘭).방화평(方華萍).범건군(范建軍)

범기화(范其華).범조대(范早大).서원명(徐元明).서유명(徐維明).소순생(邵順生).왕도(王濤) 왕생제(王生娣).왕소룡(王小龍).위종운(韋鐘云).유봉영(劉鳳英) 이군(李群) 이예(李霓)

장소언(蔣小彦).장진중(張振中).전상분(錢祥芬)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공예미술사)

갈도(葛韜). 강덕중(强德俊). 고건방(顧建芳). 고빈무(顧斌武). 고상군(高湘君). 고위분(顧衛芬). 당영재(唐永才). 범우량(范友良). 범지충(范志忠). 부기방(怀其芳). 사소명(史小明). 상려병(桑黎兵) 서설연(徐雪娟) 서청(徐靑).속단생(束旦生).속봉영(束鳳英).손백춘(孫伯春).손지평(孫志平). 손홍원(孫洪源).시수춘(施秀春).여준경(呂俊慶).오건림(吳建林).오상대(吳祥大).오숙영(吳淑英)오아극(吳亞克).오아역(吳亞亦).왕국상(王國祥).왕삼대(王三大).왕수방(王秀芳).왕품영(王品榮)요서궤(廖西氿).운익평(惲益萍).육홍위(陸虹煒).이미금(李美金) 이빈(李斌) 이원림(李園林) 이혜방(李慧芳).장경쟁(蔣競崢).장옥림(庄玉林).장옹군(蔣雍君).장지강(張志强). 조량(趙良)조연평(曹燕萍).주신홍(朱新洪).주정화(周定華) 진성(陣成).진악림(陣樂林).진홍평(陣洚平)최국금(崔國琴).추옥방(鄒玉芳).침건강(沈建强).포리안(鮑利安).포월토(鮑月免).하숙군(夏淑君)한소호(韓小虎).허화방(許華芳).호홍명(胡洪明).호영성(胡永成)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공예사가 되기 전단계의 (구유(具有)조리공예미술사)

강신위(姜新偉).담약위(談躍偉).동개생(董開生) 로호(魯浩).마신근(馬新勤).모문걸(毛文杰)

방유금(方幼琴).범내지(范乃芝).범려화(范麗華).범아금(范亞琴).범영선(范榮仙).범탁화(范卓華)사과금(史科琴).서수문(徐秀文) 서평(徐萍).오개호(吳開滸).왕복군(王福君).왕소군(王小軍) 유효방(兪曉芳) 이명(李銘) 이하(李霞).장국방(張菊芳).장해평(張海平).장화선(蔣華仙)

전국화(錢菊華).주영금(周榮金).주지화(周志和).주효금(周曉琴).제정원(諸婷園).진품수(陣品壽) 침국방(沈菊芳).침룡제(沈龍娣).하연평(何燕萍).한홍파(韓洪波)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기사.技師)

담벽운(談碧云).사지붕(史志鵬).서옥방(徐玉芳).오량병(吳亮屛).왕아금(王亞琴).우혜분(牛惠芬) 이조렴(李兆濂).이홍신(李洪新).장순영(蔣順英).장홍분(張紅芬).주곤생(周坤生).주붕갑(周鵬甲) 주지지(周志之).진봉매(陣鳳妹).침혜분(沈惠芬).포계균(鮑啓鈞).풍희아(馮希雅).하창주(夏滄州)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조리공예미술사)

갈호상(葛昊翔) 갈훤(葛烜) 강운상(江云祥).고건군(顧建軍).고건화(高建華) 고근(顧勤)

고분영(高奮榮).고수연(顧秀娟).고약명(顧躍鳴) 고언(高嫣).고유지(顧幼之) 고준(高俊)

고중남(高中南).고효빈(顧曉斌).고학중(顧學中).공효명(孔曉明).곽초강(郭超鋼).노신화(魯新華)담효군(譚曉君).담효연(譚曉燕) 당가(唐可).당륙금(唐六琴).당백금(唐伯琴).당조군(唐朝君)당조하(唐朝霞).당조홍(唐朝紅).도강화(堵江華) 동건(董健).동아방(董亞芳).라택남(羅澤南) 마지원(馬志遠).만랑법(万桹法).매보옥(梅宝玉) 민로(閔璐) 모단(毛丹).모순홍(毛順洪)

 

모자건(毛子健). 모춘영(毛春英). 묘춘홍(苗春洪). 반민(潘岷). 반소충(潘小忠). 반약명(潘躍明). 반준(潘俊). 방소룡(方小龍). 방위금(方偉琴). 범건영(范建榮). 범건화(范建華). 범국흠(范國歆). 범려명(范黎明).  범영(范穎).범위강(范衛强). 범위군(范偉群). 범인량(范仁良). 범중명(范中明) 비인원(費寅媛).사건충(史建忠).사건평(史建平).사순강(史順强).사은지(史銀芝).사학명(史學明)서립(徐立) 서문(徐雯).서신매(徐新妹) 서이(徐頤).서익근(徐益勤)서지천(徐志倩) 설위평(薛衛平).소가성(邵家聲).소위민(邵偉民).소육분(邵毓芬).소일평(邵逸平).

 

소패화(邵沛華) 손립강(孫立强).손지금(孫志琴).송보연(宋宝娟).양의부(楊義富) 양준(楊俊).여대림(呂黛琳)예건군(倪建軍).오건강(吳建强).오개춘(吳介春).오기민(吳奇敏).오기완(吳奇婉).오문신(吳文新)오방제(吳芳娣).오서봉(吳曙峰).오소평(吳小萍).오순화(吳順華) 오연(吳娟).오영군(吳燕群)오유파(吳幼波).오정유(吳正裕).오지강(吳志强).오추문(吳秋文).왕가균(王珂鈞).왕련방(王聯芳)왕룡해(王龍海).왕매방(汪梅芳).왕분량(王奮良).왕성경(汪成琼).왕소립(王瀟笠).왕아군(王亞軍) 왕협(汪叶) 왕행군(王杏軍).왕혜중(王惠中).요강령(廖江玲).요지원(姚志源).요지천(姚志泉)용약준(勇躍駿).운지배(惲志培).원국강(袁國强).위지운(魏志云).

 

유건방(劉建芳).유검비(劉劍飛) 유석분(劉錫芬).유영준(兪榮駿).유우량(劉友良).유위청(劉偉淸) 육군(陸軍).윤월화(尹月華) 윤홍제(尹紅娣).은혜연(殷惠娟) 이위(李瑋).이원군(李元軍) 이하(李霞).이함명(李涵鳴) 임혜분(任惠芬).장건명(蔣建明).장건군(蔣建軍) 장검(張劍).장국평(張菊萍).장금봉(蔣金鳳)장려문(蔣麗雯).장매진(張梅珍).장생영(張生榮).장수림(張樹林).장숙희(蔣淑希).장염빈(蔣琰濱) 장예화(蔣藝華).장유과(張幼科) 장의(張毅).장재원(蔣才源).장지청(張志淸).장철위(張哲偉)장효뢰(張曉蕾) 저붕(儲峰).전건생(錢建生).전국평(錢菊萍).전오생(錢午生).제갈일선(諸葛逸仙)조강화(趙江華).조건국(曹建國).조기민(曹奇敏).조명민(趙明敏).

 

조연봉(曹燕鋒).조우굉(曹宇宏) 조홍생(趙洪生).조희붕(趙曦鵬) 주강(周剛).주국방(周菊芳).주근제(周勤媞).주기곤(周其坤) 주기대(朱其大).주길평(周洁萍) 주단(朱丹).주봉해(朱峰海) 주빈(朱斌).주신보(周新保)주아금(朱亞琴).주영충(朱永忠).주위군(周偉君) 주정(周婷) 주파(周波).주홍균(周鴻鈞) 주휘(周煇) 진국굉(陣國宏).진국방(陣國芳).진순배(陣順培).진의군(陣依群).진지영(秦志榮)침림(沈琳) 침인화(沈寅華).침채아(沈彩娥).포문군(鮑雯君).포봉암(鮑峰岩).포연평(鮑燕平)포옥미(鮑玉美).포이민(鮑利民).포정란(鮑正蘭).포정애(鮑庭嬡).포정평(鮑正平).포지연(鮑志娟)포청(鮑靑) 풍여매(馮餘妹) 하립(夏立) 하협(何叶) 하일민(夏逸民) 함청(咸晴) 허굉준(許宏俊).허애화(許愛華).호오군(胡敖君) 화건(華健) 하건(何健) 황려문(黃麗雯) 황맹군(黃孟君).황순법(黃順法).황욱봉(黃旭峰).황운운(黃云云)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조리공예사가 되기 전단계의 (구유(具有)공예미술원)

고효동(高曉東).범숙연(范淑娟).범지강(范志强).오동근(吳東瑾) 왕민(王敏).원립신(袁立新)

장금방(張琴芳).장수연(蔣秀娟).중소근(仲小根)

 

의흥시 자사(도자)협회에 등록된 (공예미술원)

갈소연(葛小燕). 갈이림(葛二林). 강근상(江勤祥). 강제인(强濟人). 경은풍(耿銀風). 고건명(顧建明). 고건붕(高建鵬). 고건충(顧建忠). 고뢰뢰(顧磊磊). 고릉운(高凌云). 고백남(高伯南) 고봉(高峰). 고소려(顧小麗). 고신군(顧新軍). 고영위(高永偉). 고위충(高衛忠). 공춘화(孔春華). 관신평(管新平). 구빈(瞿斌). 금전대(金全大). 기옥림(祁玉林). 노영강(盧永强). 담약분(談躍芬).당건림(唐建林)당연평(唐燕萍).동일명(東逸明).동채분(董彩芬) 두추(杜秋).등아아(鄧亞亞).라백평(羅伯平) 마군동(馬群東).마영강(馬永强) 만도(万陶).만신홍(万新洪).

 

만아균(万亞鈞).맹효군(孟曉軍) 민아평(閔亞萍) 반도(潘濤).반석연(潘錫娟).반육민(潘育民).반위명(潘偉明).반일청(潘一淸)범건강(范建强).범건중(范建中).범년봉(范年丰).범석군(范錫軍).범소군(范小君).범소룡(范小龍)범수홍(范秀紅).범순군(范順君).범신아(范晨亞).범의연(范宜娟).범천명(范泉明).범학군(范學群)범해연(范海燕).범행화(范杏華).범홍영(范紅英).복설연(濮雪娟).비명화(費明華).사명휘(謝明暉)사명(謝明) 사방(謝芳).사위서(史偉曙) 서건(徐健).

 

서건방(徐建芳). 서란군(徐蘭君). 서방(徐芳). 서소평(徐小平). 서암화(徐暗華). 서약(徐躍). 서영비(徐榮飛). 서준(徐俊). 소미방(邵美芳). 소준분(邵俊芬). 속군(束群). 손금립(孫金立). 손위연(孫偉娟). 손홍영(孫紅英). 송소위(宋小衛). 승건(承健). 양건붕(楊建鵬). 양수분(楊秀芬). 양위청(楊偉淸). 양유고(楊維高). 양일문(楊逸雯). 여기대(余其大). 여아군(呂亞君). 오건명(吳建明). 오건평(吳建平). 오국춘(吳國春). 오군(吳軍). 오리군(吳利群). 오림제(吳林娣)

 

오방(吳芳).오새춘(吳塞春).오소군(吳小軍) 오아평(吳亞萍).오우량(吳优良).오운봉(吳云峰).오정정(吳婷婷).왕계분(王桂芬).왕국량(王國良) 왕국평(汪國平).왕리군(王利君) 왕방(王芳).왕성림(汪成林).왕성우(汪成友).왕은방(王銀芳)왕운운(王云云) 왕춘(王春).왕춘명(王春明).왕풍반(王風盤).요아근(姚亞勤) 우굉(虞宏) 원조주(袁朝舟).위문성(魏文星).위백가(魏柏柯).유건군(劉建軍).유국아(劉國亞) 유군(劉軍) 유군화(劉軍華).유소민(劉小敏).유소청(劉小淸) 유준(劉俊) 유진(兪震).유효청(劉曉淸) 유홍선(劉紅仙).육교영(陸巧英).육이화(陸利華).육지운(陸志云).윤건신(尹建新).윤소영(尹霄榮) 윤욱봉(尹旭峰).은재평(殷才平).이금림(李金林) 이진(李震) 이위(李偉).이위명(李衛明)이점평(李占平).이혜강(李惠强).이혜방(李惠芳) 임군(林軍).임영분(任永芬).장가림(張家林) 장건(張健) 장건아(蔣建亞).장금방(張琴芳).장립군(蔣立軍).장소군(蔣小軍).장서봉(蔣瑞峰)장숙평(蔣淑萍).장순영(張順榮).장아평(蔣亞萍).장악량(蔣岳良).장여연(張麗娟).장려아(張麗雅)장봉(蔣峰) 장영충(庄永忠).장옥방(庄玉芳).장욱초(蔣旭初).장운방(蔣云芳) 장위(張煒)장위군(張偉軍).장의분(蔣懿芬).장이군(蔣李軍).장이금(張利琴).장익군(蔣益軍) 장인(張寅) 장자위(張子威) 장정(張靜).장지강(蔣志强).장채영(張彩英).장천방(蔣泉芳).장청금(張聽金) 장택군(蔣澤軍).저국량(褚國亮).전설매(錢雪妹).전아빈(錢亞斌).전일청(錢一淸).전흥홍(錢興洪)정검봉(鄭劍鋒) 정기(程琦).정익민(丁益民).정준굉(丁俊宏) 정현(程懸) 조군(趙軍) 조길(曹洁) 조맹군(趙孟君).조민민(曹敏敏).조설금(趙雪琴).주소명(周小明).조신군(趙信軍) 조우굉(曹宇宏).조지금(趙志琴).종지선(宗志仙).주건영(周建英).주건충(周建忠).주경대(周庚大)주관화(周冠華).주국민(周國民).주립민(周立民).주립신(周立新) 주민(朱敏) 주봉(周峰) 주빈(朱彬) 주소풍(周小風).주신남(朱新南).주영매(周榮妹).주영강(周永剛).주우걸(周宇杰)주위(朱偉) 주익군(周益軍).주인복(周寅福).주조휘(朱朝暉).주지군(周志君).주지신(周志新) 주춘풍(周春風).주품흠(周品鑫).주협신(朱叶新).주효충(周孝忠).진강기(陣江其).진국위(陣國偉) 진리군(秦利君).진모운(秦慕云).진미군(陣米軍).진부대(陣付大).진순근(陣順根).진영강(秦永强)진옥량(陣玉良).진운령(陣云嶺).진운봉(陣云峰).진위명(陣衛明).진일평(陣一平).진정초(陣正初)진춘분(陣春芬).진혜홍(陣惠紅).최룡희(崔龍喜) 추란(鄒蘭).침충영(沈忠英).침화평(沈和平)탕택신(湯澤新).포홍하(鮑紅霞).풍군성(馮群星).풍운화(馮云華).풍지명(馮志明).풍행화(馮杏華)풍홍군(馮洪君).하건신(何建新).하결평(夏潔萍) 하영(夏穎) 하형(何馨).하홍매(賀洪梅) 하홍생(何洪生).하홍청(賀洪淸).항려청(杭麗淸) 항봉(杭鋒).항조강(杭兆强) 항준(項峻) 허국강(許國强).허귀연(許歸娟).허매영(許梅英).허민방(許敏芳).허사군(許士君) 허중(許仲)허학방(許學芳).호립민(胡立敏).호조군(胡朝君) 호흔(胡欣).화건민(華建民).화건충(華建忠) 화산(華珊) 화설금(華雪琴).황위봉(黃偉峰).홍화평(洪華平)

 

신봉균

1. 한글이름 : 신봉균
2. 한자이름 : 
3. 영문이름 : Shin bonggyun
4. 생년월일 :  1964년 12월 21일

5. 주 소 :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543번지
6 . 우편번호 :
7 . 연 락 처 : 052-264-2721
8 . 핸 드 폰 : 011-875-2721
9 . 학 력 :
10. 주요경력 : 

2002년 지랑요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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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균 사기장의 상세 내용은 2004년 <사기장이야기>를 참조

김순식 金順植

1. 한글이름 : 청암 김순식
2. 한자이름 : 靑岩 金順植
3. 영문이름 :  Kim soon-sik
4.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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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      소 :
6. 우편번호 :
7. 연  락 처 : 031-632-8041
8. 핸  드 폰 : 017-221-3216
9. 학      력 : 경기대미술교육대학원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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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주요경력

     개인전
     1996년 김순식현대벽화전(인사갤러리)
     1998년 김순식 프레스코전(인사갤러리)
     2003년 기순식 도자 회화전(인사아트센타)

     초대, 단체전
     2003년 광주요작가2인전(부산 파라디아명품관)
     2002년 형형색색전(광주요연구소연구기획전)(경인미술관)
     1997년 대고구려대영박물관기념미술제(LOGOS갤러리, 런던)
     1991년 예술성-그현대전(갤러리도올)

김기철

1. 한글이름 : 김기철
2. 한자이름 : 
3. 영문이름 : Kim Ki Chul
3. 생년월일 : 1935년 충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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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    소 :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곤지암리 387-1
5. 우편번호 :
6. 연 락 처 : 031-762-6209
7. 핸 드 폰 :
8. 학    력 : 고려대학교 및 동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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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요경력 : 

   1979년 제4회 공간대상 도예상 수상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 미국, 프랑스 순회전 / 파리. 뉴욕
   1983년 한영 한독 수교 100주년 / 영국. 독일
   1986년 백자 특별전 호암미술관
   1993년 서울 현대 도예 비엔날레 초대전
   1996년 제7회 미 아랍아마주 한국의 날 행사 초대전
   2001년 제8회 스웨덴 에덴링 박물관 초대전

   현 보원요 운영

김인용 金仁勇

1. 한글이름 : 김 인 용
2. 한자이름 : 金 仁 勇
3. 영문이름 : Kim In-yong
3. 생년월일 : 1971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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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    소 :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288-3 용도예
5. 우편번호 : 464-862
6. 연 락 처 : 031-766-1990
7. 핸 드 폰 : 017-277-0543
8. 학    력 : 단국대학교 도예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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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요경력

1999년 제1회 풀빛 자기전.
2000년 행복한 세상 백화점 초대전. 세계도자기 프레엑스포 참가.
2001년 제2회 풀빛 자기전.
          제1회 세계도자비엔날레 참가.
          (THE 1st WORLD CERAMIC BIENNALE 2001 KOREA)
2002년 제3회 풀빛 자기전.
2003년 제1회 국제 차 문화대전 참가.(TEA WORLD FESTIVAL 2003)
          제2회 세계도자비엔날레 참가.
          (THE 2st WORLD CERAMIC BIENNALE 2003 KOREA)
2004년 제2회 국제 차 문화대전 참가.(TEA WORLD FESTIVAL 2004)
2005년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 참가.
          (THE 3st WORLD CERAMIC BIENNALE 2005 KOREA)
그외 단체전 다수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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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용 사기장의 상세 내용은 2006년 <아름다운차도구> 2권, 티웰 / 기사 참조

김영태 金永泰

1. 한글이름 : 단산 김영태
2. 한자이름 : 丹山 金永泰
3. 영문이름 : 
3. 생년월일 : 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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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    소 : 경남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 192-2
5. 우편번호 :
6. 연 락 처 : 055-852-8378
7. 핸 드 폰 : 016-588-8378
8. 학    력 : 부산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공예학과 졸업(도자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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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요경력

1979년 도예 입문
1986년 부산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공예학과 졸업(도자전공)
1998년 명다완전(경남문화회관)
1999년 장작가마 2인전(서울 토 아트 갤러리)
2001년 개인전(통인화랑)
2002년 개인전(인사 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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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 김영태 사기장의 상세 작업은 2004년 <사기장이야기>를 참조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김시영 金時泳

1. 한글이름 : 김시영
2. 한자이름 : 金時泳
3. 영문이름 : 
3. 생년월일 : 1958년 경기 가평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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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    소 :
5. 우편번호 :
6. 연 락 처 : 031-584-2542
7. 핸 드 폰 : 019-604-9661
8. 학    력 : 연세대학교 금속과 졸업
             동대학교 산업대학원 세라믹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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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요경력

1986년 연세대학교 금속과, 동대학교 산업대학원 세라믹과 졸업
1997년 고려흑유자 개인전(잠실 롯데 갤러리)
1996년 일본 사이타마 도예전(특별상)
1995년 가평문화상 수상(문화예술 부문)
1999년 경기 으뜸이 선정(흑유자공예)
2001년 세계도자기 엑스포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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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 사기장의 상세 정보는 2004년 발행 <사기장이야기> 참조

김태한 金太漢

1. 한글이름 : 김태한
2. 한자이름 : 金太漢
3. 영문이름 : Kim tae han
3. 생년월일 : 1939년 경남 마산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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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    소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인후1리 316번지
5. 우편번호 :
6. 연 락 처 : 031-637-8745
7. 핸 드 폰 :
8. 학    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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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요경력

1955년 동광도기 입사 성형, 그림, 조각 등 작도수업 시작
1958년 경남 밀양도기 수석성형사
1961년 좌봉, 묵전, 한청 삼형제 경기 이천도기 설립
1975년 지순택요 공장장 및 수석성형사
1990년 3월 일본 현대거장전(한일 우호 고려도자기전)등을 비롯
        1989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전국에서 400여회의 개인전 개최
2000년 ~ 2001년 4월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다기 명품 100인전
2002년 1월 통인화랑 “찻그릇 오늘 그리고 내일... 7인”展

 

김태한 사기장에 대한 상세한 계보와 작품은 2004년 <사기장이야기> 참고

김정옥 金正玉

*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지정

1. 한글이름 : 백산 김정옥
2. 한자이름 : 白山 金正玉
3. 영문이름 : Kim  Jeong Ok
3. 생년월일 : 1941년 경북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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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    소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진안리 16
5. 우편번호 :
6. 연 락 처 : 054-571-0907
7. 핸 드 폰 :
8. 학    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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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요경력 :

   1987년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수상
   1988년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수상
   1991년 노동부 장관 표창
   1992년 경상북도 문화상 수상
   1997년 한국 총영사관 개인전 등 4회
   1999년 문경대상 수상
   2000년 대통령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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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김정옥 사기장에 대한 제자 계보는 2004년 발행 <사기장이야기> 참조

정보 등록 방법

차도구를 만드는 작가의 인명 사전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작가 스스로 신상을 공개하고자 하는 분은 메일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보내주시면, 작가 사전에 올려드립니다. 향후 내용을 수정하고자 하시면 수정할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시거나 뎃글또는 방명록에 남기시면 됩니다.

 

공개된 내용은 작가에게 허락을 얻거나 작가로 부터 제공받은 것을 확인하고 올린 것입니다.

작가 프로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0개가 넘지 않도록 합니다.

 

메일 : teakey@naver.com

한국 행다의 주체성

한국 행다(行茶)의 주체성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행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더욱 깊어진다. 내년에도 전국에서 한국차를 배우기위한 노력보다는 중국차를 배우거나 중국차와 관련된 자격증을 발급하는 사업이 사업성과 명분을 가지고 각단체가 경쟁적으로 주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일본 다도를 배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전국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 글은 지난 2005년 10월 월간다도에 기고 한 원고이지만, 12월31일 한 해를 보내면서 2006년에는 우리의 행다법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면서 ‘한국 行茶의 주체성’다시 한 번 올려본다.

금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국내외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마무리되고, 어떤 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진행이 되고 있다. 사건, 사고가 많은 시기에는 문화가 기를 펴지 못한다. 현대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고 급히 지나가기에 전통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높이 숭앙된다.

전통중에서도 예의를 다한 것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밀레니엄도 5년을 넘기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행다는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이 글에서는 더할나위없이 솔직히 말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행다(行茶)와 다법(茶法)의 용어 선택에 대해서는 행다로 정하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행다 : 차를 내기 위해 정해진 동작에 의해서 행동을 모범적인 법칙에 맞게 한다.
다법 : 차를 내는 행위뿐 아니라 차 맛이나 차의 정신까지를 포함하며, 차 따는 법, 차 우리는 법, 차 마시는 법 모두를 포함한다.

주지하는 바,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우리의 행다는 참으로 묘한 형상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순 조선식도 아니고, 순 일본식도 아니駭? 수많은 차 선생의 입장은 든든한 반석이 아닌 눈총을 받는 입장인 경우가 더 많았었다. 양반 가문에서 차(茶)를 통한 전통은 미미했고, 일본식 차 마시는 법이 올바른 법도인 양 행세를 해 왔다. 차 마시는 일과 그 주변적 행위가 문화적인 형태이기에 평범한 가정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했고, 속칭 상류에서의 유형이 근년에 이르러서야 여러 계층이 공유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장되었다. 아는 사람만 알던 보이차의 이론이 흔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차인 확대의 결과라 하겠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는 역사적 배경 속에 사람들이 살아오던 정신적, 물질적, 생활적인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일본은 실생활에서의 음료로 굳혀진 중국에 비해 역사적, 지배 이념의 특수성, 계층의 분화 등 철학적, 이념적 특성을 가지고 있되, 그 근본적 외양과 형태로 중국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차 마시는 일에 굳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한 . 중 . 일 세 나라가 가까우면서도 참으로 특성이 고유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 이념과 방식을 가지고 차 마시는 행위를 완성시켰을까? 진실로 골똘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다법을 배우고, 중국에 가서 이국적인 것에 자격증도 가지고 오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이 땅의 사람들이 가지고 또 공감하는 우리네 전통 행다법은 어디에서 배워오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가? 일부 우리식으로 주체성을 가지고 발표한 것은 외면당하거나, 정통이 아니라는 식의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다법이 일본식(日本式)이라는 현실은 그러한 바탕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주변은 확대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진실된 전통성이 있는 행다법을 보여줄 의무가 차인들에게 있다. 우리는 유가식(儒家式) 행다가 있었고, 전통 가내(家內) 행다법이 남성, 여성을 구분하여 존재 했었다. 관혼상제에 존재했으며, 그 의식의 수준과 차의 선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연습은 많이 되었다. 이젠 우리의 행다법이 나타날 차례가 아니겠는가? 외국의 형식이 모방되어 펼쳐진다 해도 그 내면에 우리의 정신이 표출될 수 있을까?

혹자는 일본식 다도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시간적인 이유를 들어 한국식 행다법을 형성케 했다고 한다. 일부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30년간 차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창기 차인들이 일본의 전차도 및 말차 행다를 모방하면서 행다 발표를 해 왔다.

양반 문화가 소멸되다시피 한 근대화 이후 식민 산업, 그 후의 전환, 다시 산업화된 사회의 조류는 그 이전의 전통성을 까마득히 망각하게 만들었던 것의 주된 이유라 하겠다. 현재 우리의 행다법은 일본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 우리식도 아니다. 일본식 행다법에서 생략되고, 사찰에서의 선다법이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에서 표현되고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서의 전차도는 각 유파마다 국지적인 특성이 나름대로의 철저한 동작이 이미 굳혀졌고, 그 본질인 차의 맛과 사용되는 기물의 수준을 논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차의 맛으로까지는 접근치 아니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면에 치중하고 있다. 혹여 비판받을 현실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발전은 긍정적인 것이다. 의례라고 하는 것은 철저한 외양상의 절차와 격식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런 형식적인 면이 굳어져야만 그 후에 차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형식을 멀리한 경우에는 높은 평가의 기준이 차 맛에 있겠지만, 행다법에 있어서의 1차적 급선무는 형식의 정립임에 두말할 나위 없다. 중국에서의 선차와 불차,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련의 중국식 다예표현의 일면을 살펴보자. 생활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튀어나온 문화상품의 성격도 성격이려니와 화려한 동작은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성에 의거했지만 실제로는 근래에 만들어진 행다에 그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이 수준이다. 우리의 수준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또 외면하면 안 된다. 우리의 수준을 똑바로,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 계단이 무엇인지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의 격식과 예절을 지니고 의례가 넘쳐나고,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기품 있고 잘 갖추어진 한국의 행다법을 만들고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내면에 철저히 다듬어진 우리의 철학과 의식이 살아 숨 쉬고 찻잔에서도 한국차의 향과 맛이 그득히 넘쳐흐르는 한국의 행다법이 자연스레 정립이 될 것이다.

무조건 모방하고 제 것인 양 만들어 보이는 일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과 역사적 유구함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중국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이다. 한국의 행다법이 무엇이 될까,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행(行)하고 생각(思)해야 하는 문제이다. 어렵게 베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과 몸으로 체득하여 이루어지는 생활이며, 더 나아가 전통이 되어야 한다.

2005. 12. 31 석우.

차도구 용어와 명칭 부분 확정

동양차도구 연구소에서는 2007년부터 차도구 용어와 명칭, ‘茶’(차와 다)의 발음에 대한 것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공지합니다.

차도구(茶道具)의 용어와 명칭에서 무조건 우리 식의 이름을 정하기보다는 명칭의 시기에 따른 역사성과 한자(漢字)와의 결합에서 격조가 있는가 하는 문제도 크게 고려하였다. 예를들면 도자기(陶磁器)를 도자기(陶瓷器)로, 꽃병을 화병(花甁)으로, 주전자를 주자로 정하였다. 수 십년간 사용해온 관용구는 그대로 두고, 정착이 안된 부분은 그 뜻과 발음이 잘 전달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관용구
차인, 차도구, 다도, 다완, 다기, 다화, 제다, 행다법, 춘차, 추차, 하차, 동차 등

한자의 음으로 읽어야 되는 것은 ‘다’로 한다.
다신전, 동다송, 대관다론, 점다법, 자다법, 포다법

‘다’와 ‘차’의 사용을 혼용해온 것은 아래와 같이 정한다.
다시(茶詩) - 차시(茶詩) / 차시
다실(茶室) - 차실(茶室) / 차실
선다(仙茶) - 선차(仙茶) / 선차
다문화(茶文化) - 차문화(茶文化) / 차문화

일본의 찻자리에서만 사용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한 예가 없는 경우의 도구 이름은 일본 차도구의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다. 미즈사시, 히샤쿠 등 일본에서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 차문화에서도 사용되어온 차 숟가락은 차시(茶匙)라고 한다.



정호다완(井戶茶碗)

정호다완(井戶茶碗)

 

16세기 전후 조선의 무명 사기장들이 만들어온 그릇이 일본의 와비차 다도를 완성시킨 센리큐(센리큐)의 다도 정신과 부합되어 400년간 다완의 왕좌로 정통성을 가지고

 

일본 다도에서 다도구 가운데 최고의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고려다완은 조선시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생산된 그릇으로서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대정호(大井戶), 청정호(靑井戶), 고정호(古井戶) 그중 다완의 최고 자리를 차지하는 대정호다완(大井戶茶碗)이 있다. 그러나 대정호다완은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다완이 아니다.

 

대정호다완은 사람들이 만들어 온 대단한 권위적 사용례가 많고, 또 그렇게 굳혀 온 전통적 측면에서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어려운 점이 있다. 다시 말해 정호다완은 자리와 계절, 다른 도구와의 격과 조화가 잘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등장하는, 이른바 차도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정호다완의 특징

- 색상과 질감이 동양인의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속살과 같다.

- 숙련된 노력으로 한 번에 형태를 잡아서 만드는 것이다.

- 사기장의 기와 힘찬 곡선이 살아있다.

- 다완의 동체 각부분에서 풍부한 감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 높은 대나무 굽 모양에 물레선이 힘차고 당당한 형태에 투박하게 보이면서도

가볍고 적당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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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박사학위 논문 : "한국 차도구 명칭 통일 모형에 관한"에 기초로 한문의 표기는 음독을 원칙으로 하기에 이전에 사용한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정호다완으로 표기한다.

 

다완의 정의

1. 다완(茶碗)의 정의  
  다완은 말차를 마시기 위한 다기이므로 그 기능을 만족시키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양손으로 들어 잡았을 때, 적당한 안정감과 중량감이 있어야 하고, 만져진 느낌에서 따사로움이 전달되어야 한다. 아울러 입술에 닿았을 때의 깊은 느낌, 차솔을 사용하면서의 편리성 등에 대한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다미(茶味)를 맛 볼 수 있어야 한다.

2. 다완의 기본 조건
  차와 관련한 기물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작품성을 요구하는 다완은 형태(形), 질감(觸), 경치(景)를 감상할 수 있는 3가지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말차를 타면 차가 잘 타지는 것이 좋고, 다완을 오랜 기간 사용하면 차심이 품위가 있고 고귀하게 들어가야 한다.

 1)형태
 - 물레질에서 힘찬 곡선이 나오면서 비례가 맞아야 한다.
 - 크기에 비례한 적당한 중량감을 가져야 한다.
 - 다완의 형태에 어울리는 굽이 되어야 한다.
 - 다완 안쪽의 차 고임자리는 자연스럽게 되어야 한다.

 2)질감
 - 좋은 흙을 사용하여 제작된 다완은 적당한 열전도로 뜨겁거나 차갑지도 않는 따뜻한 열전도가 되어야 한다.
 - 다완의 표면이 너무 빤짝거리지 않고, 손에 쥐면 감촉이 좋아야 한다. 사용한 유약의 좋고 나쁨의 가름은 유약의 상태에 따라서 크게 좌우되는데, 좋은 유약을 사용하게 되면, 자연스러우면서 천연적인 색감과 질감을 얻을 수 있다.

 3)경치
 - 형태에 따라서 계절과 잘 어울리는 색감이나 요변은 감상의 가치를 더 높혀 준다. 요변이 있는 경우는 요란하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젊잔은 것이 좋다.
 - 흙과 유약이 잘 조화되어 천박하지 않고 계절에 맞게 어울리는 멋이 있어야 한다.

차도구 명칭 연구의 필요성

 韓國 茶道具의 名稱


한국 차도구에 대한 명칭이 정립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국제적인 명칭에 대한 정립문제이다. 국제적인 명칭은 이미 문화적으로 많이 알려진 중국과 일본에서 국제적 명칭의 연륜을 쌓아나가고 있다.

이는 곧 세계화의 영향으로서 우리가 앞선 문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의 문물과 명칭을 알리지 않는다면 곧 국지적인 명칭으로 전락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때문에 우리는 국제적인 명칭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가장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규범이 될 수 있는 차도구의 명칭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예는 우리의 “김치”가 일본의 문화적 산물이 될 뻔한 최근의 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역사적이며 문화의 근원을 잘 판단하여 일본의 문화상품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차도구의 면에서도 이러한 사항은 대표적인 “다완”의 문제가 남아 있다.

때문에 우리의 차문화 속에서도 차도구의 명칭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은 여실히 알 수 있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다완”이라는 명칭도 우리식의 “사발”이라고 하는 명칭에 우선되는 전래명칭이며 우리에게로 건너와 일본에 전래될 당시 한자문화와 한글문화가 뒤섞인 조선 중기에 해당하므로 어느 것이 우리가 내세워야 할 명칭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후 학술적으로 공통되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 되어야만 외국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국내외 명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도 수많은 기존 명칭에 대해 사용빈도와 의미의 명확성 등을 고려하여 공식적인 명칭들을 정립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차도구와 관련된 명칭자료들을 다양하게 수집하여 분석, 정리할 필요가 있다.

- 동양차도구연구소 소장 박홍관 배상 -

동양 차도구 연구소 발족의 의미

한 분야의 문화가 발전하려면 축적된 지식과 자료가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현재는 과거를 발판으로 하고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보존과 연구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기록을 많이 남긴 민족이기는 하지만 그 보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고려 때에는 삼국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지우려하고, 조선에서는 고려의 기록과 유물을 그다지 많이 남기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역사란 후손이 만들어 가는 것 이다. 특히 후손이 강자가 되어 기록한 것이나 특정한 이익이 개입된 역사의 기록이란 정확성이나 진실성을 확인 할 수 없다. 또 역사적인 물증이 있는 것이라도 치욕성이 있으면 이를 폄하하거나 말살하려 들기까지 한다. 한번 진실이 왜곡되면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이를 잘 수용하지 않으려하고 전통과 역사를 내 세우며 억지로라도 그것을 고수하려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5000년으로 한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학계에서는 원삼국으로 기점을 삼는다. 왜냐하면 나라의 기원을 삼을 만한 객관적인 기록이나 유물이 원삼국을 넘어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 학자들이 동양의 문화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정도라고 이해하고 있을 때, 3500년 전의 상(商)나라의 문자를 새긴 갑골(甲骨)이 발굴되면서 중국의 역사를 새로 인식하게 된 것처럼 물증이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에게 차의 역사는 길지만 오늘날만큼 차가 백성의 삶 깊숙이 들어 온 때는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그 자료는 턱없이 빈약했고, 그나마 있는 도자기 같은 것도 일본인들에 의해 그 값어치가 정해진 것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오래전부터 차를 마셔온 나라라고 강변해도 세계인의 눈에는 차의 기원은 중국, 차를 정립한 것은 일본으로 정리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며, 차 생산이나 소비에 있어 한국은 차를 마시지 않는 나라에 속해 있다. 비록 좋은 옥이 있더라도 그릇을 만들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아무리 긴 차 역사가 있어도 그것이 현대인의 삶 속에서 꿈틀거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차 도구란 마치 밭을 일구는 쟁기와 같아서 차문화를 일구는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다서(茶書)에서 차도구를 중요시하여 수록하였으며, 심지어 차도구에 성(城)을 바꾼다던가, 명예와 자존심이 걸려있다는 말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일본의 차선생들의 수업과정이 긴 것은 차의 예법보다 차도구에 대한 공부와 안목을 기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도구에 대해 우리나라 차인들의 인식은 아직도 그릇정도를 사 모으려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동양차도구 연구소의 발족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응해 탄생되었다. 차회는 많이 생겨도 차도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전문단체가 없는 현실 속에 동양차도구연구소는 역사속의 다도구의 발굴과 정리를 통해 우리의 차 문화를 계승하고, 현대의 새로운 차 도구를 개발하고 육성함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동양차도구 연구소가 걸어가야 할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한국 차문화를 빛내는 작은 자리매김을 할 것이기에 기꺼이 성원을 보내는 것이다. 또한 차도구만 연구하는 곳으로 한정되지 않고, 나아가 현대의 차 역사와 물증을 기록하고 보급하는 대광장(大廣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도일.

연구소 소개

우리는 그동안 차문화의 확산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최근 5년간엔 지난 20년의 결과에 버금가는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차문화의 중심에서 한 축을 이룰 수 있는 차도구에 대한 연구, 즉 문화적인 근간이 되는 기물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학술적인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어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4년제 정규 대학인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에서 ‘차도구의 이해’ 과목이 개설되었고,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예문화와 다도학과에서 ‘차도구 문화학’이 개설된 것은 앞으로 차도구 분야가 학문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토대가 될 것입니다.
동양차도구연구소는 한.중.일의 차도구를 연구하여 동양 차문화의 발전을 위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국내외 차도구 관련 정보와 함께 국제적 트랜드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저희 연구소에 많은 관심과 애정 어린 질책을 부탁드리며 인사말에 가늠하고자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양차도구연구소 설립목적

설립목적

 

1. 동양차도구연구소는 한.중.일의 차도구를 연구하여 동양 차문화의 발전을 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동양차도구연구소는 과거 차도구의 지적, 물적 유산을 토대로 한국 차도구의 미래를
    위하여 기여한다.

3. 동양차도구연구소는 차도구에 대한 교육, 홍보, 보급을 통해 차생활 정착에 기여한다.

사이트에서 블로그로 이전

그동안 동양차도구연구소 공식 홈페이지를 독자적인 사이트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기반이 카페와 블로그로 이전 되면서 활성화가 잘 되지 않고 관리의

어려움으로 블로그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훨씬 유용하게 운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어

2009년 12월 30일을 기점으로 이전하게 됨을 알립니다.

 

동양차도구연구소 소장 박홍관 배상